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타난 실존주의적 직업관 이해(불어불문학연구_2016여름호)

<어린왕자> 철학하기 제안문

-이제 문학과 철학의 소비자 역할에서 벗어나자-

 

작은 이야기 <어린왕자>는 어른들에게도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책이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과 비현실적 상상력이 소박한 이미지와 어우러진 이 이야기가 철학의 본질적 주제들을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 하이데거는 독일어역 <어린왕자> 서문에서 생동감 넘치는 일상어로 존재론의 핵심을 풀어낸 <어린왕자>를 ‘20세기에 쓰인 가장 위대한 실존적 저술 가운데 한 권’이라 평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린왕자는 어린이를 위한 책이 아니다. 어린왕자는 모든 고독을 달래주고, 세상의 장엄한 신비를 이해하게끔 인도하는 위대한 시인의 메시지이다.”

 

무엇보다 시의 정신과 어원, 본질적 형이상학을 탐구한 하이데거가 <어린왕자>를 위대한 시인의 메시지로 평가한 것은 무엇보다 사람들의 사이 즉 관계맺음을 존재의 본질로 상정한 생텍쥐페리의 존재론적 사유 때문일 것이다. 생텍쥐페리는 철학자도 아니고, 전업 소설가도 아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직업이 화가나 과학자가 아니라 요리사였듯이 생텍쥐페리의 직업은 우편비행사였다.

다양한 철학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삶의 직업을 통해 깨달은 동료의식 혹은 연대의식의 실천이다. 자신의 철학을 펼치기 위해 나치에 동조한 하이데거와 달리, 생텍쥐페리는 제2차 세계대전에 출전한 마지막 정찰 비행에서 쌍발기 ‘P-38 라이트닝’과 함께 산화했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은 생텍쥐페리의 작품으로 자신의 삶을 치장하고 있는 듯하다. 마치 탐험가의 경험을 밑천 삼아 학자연하는 <어린왕자>의 지리학자처럼 말이다.

이제는 국가 경제 수준만큼 시민의 존엄성을 지키고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대중 스스로 문학과 철학을 합리적으로 풀어내야 한다. 지식인들과 언론이 대중의 말에 귀 기울이고, 대학 논술고사 주제도 대중의 합리적인 사고 수준에서 출제해야 한다. 호기심 가득한 어린왕자, 학벌도 없는 비행사의 구도 여행기 <어린왕자>에는 현상과 본질, 정신과 몸, 존재와 소유, 인식과 실천, 언어와 실재, 깨어있음과 잠듦 등 대부분의 철학‧문학적 주제들이 우화 형식 속에 제시되고 있다.

<어린왕자>와 함께 질문의 길을 산책해보자. 그 길에서 우리는 학문이 아카데미가 아니라 현장에 근거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색적 탐구를 의미하는 이론즉 ‘theory’가 별자리 관측을 의미하는 통속 라틴어 ‘theoria’에서 유래하였듯이 말이다. 별 이야기는 모든 시, 회화, 철학의 출발점이다. <어린왕자> 역시 윤동주의 시, 고호의 그림처럼 하나의 별 이야기이다. 별을 노래하는 시와 그림과 이야기를 통해 이제는 대중을 상품으로 여기는 관념화한 사변 문학과 철학을 일상으로 되돌릴 때이다. 이제 문학과 철학의 소비자 역할에서 벗어나자. 소통의 길로 안내하는 <어린왕자>는 280여개 언어로 번역된 세계 시민 문학이자 시민 철학이다. 우리 어린왕자가 던지는 질문과 함께 철학의 문을 열고 들어가 문학과 철학을 형이상학적으로 대중화하자. 어둠 속에서 빛나는 <어린왕자> 별이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