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성>과 악

― 선악의 이원론을 넘어-

 

송 태 효

 

<차 례>

1. 서론 : <현대성>과 개인

2. 현대성의 시적 요구

2.1 개인과 군중

2.2 군중의 사건화

2.3 군중과 악

3. 매춘으로서의 예술

3.1 악과 한계 태도

3.2 영혼의 성스러운 매춘

4. 결론 : 인간의 위치

 

 

Tout ce mal, tout ce mal, en moi et chez les autres.

Les Justes, Acte III

 

 

1. 서론 : <현대성>과 개인

 

탈자아를 향한 극기 정신이 요구하는 금욕적 자세로 현재를 영웅화하는 보들레르의 <현대성 modernité>은 무엇보다도 시간의 불연속성에서 현재를 바라보는 시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현대성>은 전통과 결별한, 하나의 독립된 가치를 지니는 현재 속에서 동시대의 미학과 정신적 특성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려는 예술가의 태도이다. 이미 역사의 반열에 입성한 고전성과 함께 예술을 이루어 가고 있는 <현대성>은, 유행과 같은 새로운 현상을 반김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우연한 것들로부터 현기증을 느끼며, 사라져가는 순간 속에서 영원하고 시적인 것을 찾아내는 호기심어린 회복기 환자의 관찰 태도를 닮았다. <현대성>은 이렇게 현재를 바라보는 시선 즉 현재 속에 자신을 새롭게 자리매김 하는 인식 체계에 근거한다. <현대성>의 시인은 단절된 시간으로서의 현재를 역사의 표상으로 바라보며, 개별과 보편, 변화와 불변, 우연과 필연 나아가 유물론과 유심론이 함께 이루어가는 더욱 자유롭고 해방된 장소lieu로서의 예술 속에 현재를 변형시키며 사회의 변혁을 꿈꾼다. 하지만 현실의 진정한 변화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버리는 혁명적 시인은 이원론적 시각에 근거하여 선악을 대립시키는 기존 문단 및 법조계로부터 비윤리적, 해악적, 파괴적인 존재로 지탄 받고 망명지도 아닌 조국에서 이방인의 길을 걸어가야 했다. 영원의 드러남으로서의 순간에 충실하고, 선의 전제 조건으로서의 의도적 악을 외면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아닌 것이 만들어 가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양심적으로 추구해간 시인은, 대립적 선악론에 익숙한 대중들에게 혼란스럽고 귀찮은 존재로만 여겨졌다. 역사성이 오늘의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아름다움은 오늘의 특성이 만들어 간다는 생각을 유행의 아름다움에 눈 먼 자들이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형태면에서 아직 검증되지 않은, 기이하고 신비한 유행의 멋스러움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는 이들의 고정 관념은 오로지 박제된 아름다움만을 찍어낼 뿐이다. 고전적 아름다움이나 고전과의 유사성을 무시한 채 작품을 대할 수는 없겠지만, 현재라는 새로운 시간에 내재된 새로운 형태와 새로운 질서를 제대로 담아내는 것도 역시 중요하다. 용기와 내용물의 관계처럼 현대의 특성을 담아내는 작품의 형태는 어제의 그것과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예술의 절반을 이루는 현대적인 것에 대한 시각은 현재를 바라보는 시각에 근거하며, 이러한 시각의 특성은 현재를 연속선상에서 바라보지 않고 하나의 독립된 단위로 바라보는 인식 체계의 단절로서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에 근거한다. 오늘의 작품이 지니는 특별한 아름다움을 독립된 가치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현재를 독립된 시간으로 보지 않으려는 고전적 시간관과 무관하지 않다. <현대성>이란, 현재를 과거의 연속선상에서 바라보고 고전성에만 숭고함을 부여하려는 고전예찬론 ― 이미 신구논쟁을 통해 우리가 그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 그리고 어제의 권위를 오늘의 권력으로 삼으려는 빗나간 아카데미적 태도에 대항하는 시인이 현실 체험을 통해 찾아낸 실천적 덕목이었다.

보들레르 이전, 시간의 불연속성에 의거하여 현재로서의 지금 이 순간을 체계적으로 문제 삼아 철학자 개인의 소임을 인식 자체 및 역사에 관한 성찰과 관련시키고, 자신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한 이 순간을 특별한 분석과 관련시킨 철학자로 칸트를 들 수 있다. 1784년 11월「월간 베를린 la Berlinische Monatschrift」이 제시한 「계몽이란 무엇인가? Was ist Aufklärung?」라는 질문에 대해 칸트가 동명의 제목으로 답변을 제시할 때까지 철학사 전체를 통해 드러나는 현재의 문제에 관한 인식은 대체로 시간의 연속성에 근거한다. 인식체계의 단절 속에서 역사가 진행된다고 보는 푸코는, 연속성에 의거한 현재에 대한 인식 태도를 다음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첫째, 현재의 고유한 특성들 혹은 극적인 사건을 근거 삼아 현재를 다른 시대와 분리하여 세계사의 한 시대에 귀속시키려는 태도(플라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