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의 소중함

 

생텍쥐페리는 1935년 『파리 수아르』지(Paris Soir) 리포터로 모스크바를 취재하고, 에어프랑스 후원으로 시문기(Simoun)를 구입하여 지중해 연안을 탐사한다. 그해 12월 30일 파리-사이공 비행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자신의 자가용 비행기 시문을 타고 이집트로 향하던 생텍쥐페리는 현지 시각 4시 45분 카이로에서 200㎞ 지점, 리비아 사막에 불시착하여 사경을 헤매다 5일 만에 베두인족에게 구조되어 그 처절한 고독과의 사투를 토대로 자신의 대표작 『사람들의 땅』(인간의 대지)과 『어린 왕자』가 탄생하게 된다.

사막의 불시착은 아름다움의 보고로서 보이지 않는 신비로움을 발견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황량한 모래사막 한복판에 놓인 생사의 갈림길에서 비행사는 보이지 않는 샘을 발견하고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진실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보이지 않는 물은 항상 스스로 그렇게 있다. 자신을 숨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스스로 드러내려 애쓰는 것도 아닌 물을 생텍쥐페리는 이렇게 찬탄한다.

 

물이여!

물, 너는 맛도, 색도, 향도 없구나,

너를 정의 내릴 수 없구나,

너를 음미해보나, 너를 알 수는 없네.

너는 인생에 필요한 존재가 아니다. 너는 인생 자체이니까.

너는 감각들로는 설명되지 않는 희열로 나를 파고드는구나.

너와 함께 우리가 포기했었던 모든 역량이 우리에게 돌아온다네.

너의 자비로 우리 마음에 고갈되어 있던 샘들 모두가 우리에게 열리노니.

 

무엇보다도 그가 사막에서 발견한 것은 물의 가치였다. 사마의 오아시스처럼 우리 마음의 샘들이 모두 열리면 세상 사람들의 마음도 열리러 세상은 더욱 맑고 향기로워질 것이다. 노자의 말처럼 물은 지고한 선이라 만물을 이롭게 하며, 다투지 아니하고, 사람들이 꺼리는 곳에 머물기에 도를 닮은꼴이다.

거창한 것을 추구하던 생텍쥐페리가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어린 왕자가 장미에 바친 시간 때문에 그의 장미가 그토록 소중하고, 자신이 있는 곳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함을 깨달았듯이, 그는 한 송이 장미나 물 한 모금에서 자신이 찾고 있는 것을 구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물은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위대한 풍요.

그리고 가장 현묘하기도 한 너,

땅속 한가운데 가장 순수한 너.

잡것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위조를 견디지 못하니.

너는 까다로운 신성…

하지만 너는 우리에게 행복을 베푼다,

그것도 무한히 단순한 행복을.

 

물은 우리에게 음악의 행복을 제공한다. 오랜 시간 끝에 찾아낸 오아시스가 잠에서 깨어나니 오아시스의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도르래 소리, 찰랑거리는 물소리 모두가 생명의 음악 같았다. 어린 왕자는 말한다. “물도 마찬가지야. 아저씨가 내게 마시라고 준 물은 음악 같은 것이었어. 도르래랑 밧줄 때문에……기억하지……참 좋았잖아.”

사람들은 정원에 장미꽃을 5천 송이나 가꾸지만 자신들이 찾는 것을 정원에서 찾지 못한다. 하지만 어린 왕자와 비행사는 자신들이 찾는 진실을 한 송이 장미꽃이나 물 한 모금에서 찾아낼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진실을 찾아 나선 어린왕자 그리고 어린왕자의 진실을 탐구하는 어른의 여정으로 이루어진 『어린 왕자』에서 두 인물은 어린 왕자의 죽음으로 헤어지지만 서로 길들어 각자의 별에서 꽃과 우물을 바라보며 남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별들의 웃음소리와 도르래 소리를 들으며 살아가게 된다.

“음악을 모르는 삶은 부조리 하다”고 선언한 니체와 보들레르 역시 진실을 아무 것도 아닌 사소한 것에서 추구한 작가들이다. 처음에는 거창하고 심오한 것을 찾아 위대한 왕자가 되고자 했던 어린 왕자는 여우를 만나 친구의 소중함을 깨닫고 변하기 시작한다. 이 변화는 사소한 것에서 비롯한 사건이었다. 어린 왕자는 자신이 한 송이 장미에 바친 시간이 그토록 소중하고, 사소한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하며, 한 송이 장미나 물 한 모금에서 내가 찾고 있는 것을 구할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마음 속 보이지 않는 샘에서 아무것도 아닌 물의 위대한 가치를 발견한 어린 왕자는 아무것도 아닌 장미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이다. 여우와의 이별은 아픔으로 다가왔지만 순진하고 연약한, 한 떨기 장미의 소중함을 깨달은 어린 왕자는 두려움 속에서 목숨을 건 귀향을 시도한다. 어린 왕자는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 몸을 버리고 비행사가 그려준 양과 함께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갔으리라.

장미의 계절 여름이 다가왔다. 이번 여름에는 우리도 한 송이 장미에서 불법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