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timent(s) < lat. 感情. sentiment feeling>
느끼는sentir 행위, 무엇을 느낀senti 심리 상태. 라랑드(Lalande 1960)는 감정을 인식과 대립하는 정서émotion의 근원으로 상정한다. 좀더 세분하자면 즉각적이고 유기적인 원인이 아니라 정신적 원인을 지니는 쾌락, 고통, 정서를 의미하며, 이타적이면서 공감적인 정서와 성향이므로 자아중심주의와 대립한다. 직감과 인상 자체에 대해 즉각적으로 막연하게, 아무 분석이나 정의가 필요 없이 갖게 되는 인식, 앎 혹은 의견, 견해, 믿음이기도 하다. 이러한 견해에 근거하여 “감정sentiment은 인식이 아닌 정서의 근원이다.
이와 달리 이성은 프랑스 최초의 헤겔 제자 빅토르 쿠쟁Victor Cousin이 <진선미론 Du Vrai, du Beau, su Bien>에서 밝히듯 인식의 유일한 기능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곧 인식은 미지의 것과 나를 관계 맺게 하는 사건으로 규정될 수 있으며, 이성이 작용하기 이전에 자발적 참여가 일어나며, 이성적 행위 이전에 감정이 발로하게 된다. 미지의 세계의 부름에 응하는 감정에서 이성이 발로하는 것일 수도 있다. 모든 사유는 우리 삶의 가장 깊은 감정 즉 권태 혹은 고뇌 같은 단어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당대 프랑스 최고의 지성인 모리스 블랑쇼와 조르쥬 바타유의 감정에 대한 생각에도 이러한 감정의 원초적 위치가 잘 드러나 있다. 하지만 폴 리쾨르의 지적처럼 현대철학은 정념에 대해서와는 달리 감정 연구에는 인색한 모습을 드러내왔다. 각각의 작품 외에는 어디에도 발견할 수없는 감정을 솟아나게 하는 음악처럼 감정의 질서 속에서 독특한 본질들의 세계를 철학 연구을 통해 이루어가야 한다. 음악에서처럼 감동을 받은 우리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가 순수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감정교육의 필요성이 해석학자의 주장 속에 빛을 발하고 있다.
“나아가 격한 감정을 못 이겨 울어 버리거나 지적 무력함에 울어 버리거나 하는 이 모든 것들은 하나같이 인식 수단이다. 이러한 인식 수단은 지성의 차원에 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성은 웃음이나 사랑이나 눈물을 객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여타 방식의 작용․반작용과 동일선상에서 접근하는 단계에서만 비로소 이러한 인식 수단과 결합될 수 있을 뿐이다.”(Bataille 1944)
“이러한 [글의 해방] 가능성이 진정한 것(“우리에게 당연한 것”)인 까닭은 바로 혹자는 고뇌라 이야기하고 말라르메는 권태라 이야기하는 우리 삶의 가장 깊은 감정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Blanchot 1943)
“청춘이란 온갖 종류의 감정으로 가득 차 있으며 감정이 매우 강하게 작용하고 있어 이성보다 훨씬 더 그 감정이 삶을 지배하는 바로 그 나이인데 이 시절이 우리 뇌리에 늘 남아 있기 때문이다.”(Guigot 2009:149)
“우리는 본능적으로 언어는 시 속에서 그 진정한 본질을 드러낸다고 믿게 되는데 그 모든 본질은 연상시키는 힘 언어가 표현할 수 없는 신비들을 부르는 힘 언어가 말할 수 없는 것을 행하는 힘, 형상화될 수 없는 어떤 감정 상태들을 창조하는 힘, 한 마디로 말함으로써보다는 행함으로써 저 깊은 곳에 있는 것(l’existence profonde)과 관계를 맺게 해주는 힘 속에 있다.”(Blanchot 1943:126-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