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sion < lat. patio, 情念, 熱情>

정념은 인내하고, 고통을 겪는 것, 고통 자체이며, 라틴어 고통(patior)에서 유래한다. 어원 상, 행위에 반하여 이미 겪은 것. 정념을 하나의 작용이 따르는 사건(춥다, 덥다, 슬프다 등 Catég., Ⅸ)으로 규정한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데카르트주의자들은 정념을 본능적 정신(마음)에서 발생한 인상으로부터 유래하는 모든 정신 상태. 의지와 무관한 모든 정신(마음) 상태로 규정한다. 기독교의 경우, 예수의 고통과 죽음을 의미하며, 현실에서는 주도적 혹은 지배적, 배타적 기질을 일컫기도 한다. 심리학자 혹은 모랄리스트의 경우, 심리기능 전반을 통제하면서 판단력과 행위를 혼란케 하는 배타적 기질을 지칭한다. 간혹,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에너지를 집중하여, 난해한 작품 저술을 가능토록 하는 주도적 성향을 의미한다. 열정으로 번역되기도 하고, 협의적으로는 사냥열, 독서열처럼 한정어를 수반하여 행위의 고결한 몫이 요구되는 뚜렷하고 두드러진 기질을 의미한다.(Foulquié 1980) 특히 17세기의 정념이란 “영혼의 정념(Passions de l”âme)의 약어로 약어로서 데카르트주의자들에게 정념은 영혼의 모든 수동적 현상을 의미한다. 즉 본능적 정신의 흐름과 그로부터 야기되는 모든 변화를 원인으로 현상 속에 일어나는 제반 변화들이다.(Lalande 1960)

블레이크과 사드에게 정념은 욕망의 대상들을 고통과 죽음으로 이끌고 가서 마침내 모든 것을 무화시키려는 움직임으로 모든 금기를 위반하고 죄악의 정점에 이르러 자기 자신마저 부정하기에 이른다. 바타이유는 이와 유사하게 악의 의미심장한 형태로서 정염을 규정하고 악을 정념passion을 드러내는 가장 강력한 방법으로 보았다. 현대에 이르러 들뢰즈는 정념을 자연적 건강성(bonte) 혹은 신체들이나 물체들의 마주침의 효과 및 그에 대한 적합한 혹은 부적합한 인식으로 규정하고(<스피노자, 실천 철학>), 우리 신체와 부합하지 않는 신체와 마주치는 가운데 나오는 슬픈 정념과 우리가 행위하고 이해할 수 있는 역량을 증가시키는 기쁜 정념을 대립시키고, 좋은 마주침을 선별, 조직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데리다는 정념을 욕구와 관련지어 정념과 욕구가 각각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보충 관계임을 강조한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의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따라서 의지에서 비롯하는 어떠한 행위도 일어남이 없이 오직 뇌에서 형성되는 인상에 의해 정신에서 발동되는 모든 생각을 정념이라 할 수 있다.(Descartes, Lettre à Elisabeth 6 oct. 1645)
“철학자는 새롭게 이루어지거나 일어나는 모든 것을 그것을 당하는 주체의 관점에서는 수동이라 부르고 그리고 그것을 일어나게 하는 주체의 관점에서 능동이라 명명한다. 그래서 ‘능동인’과 ‘수동인’은 종종 매우 다른 것이지만 능동과 수동은 그것들이 서로 연관될 수 있는 두 개의 다른 주체라는 이유로 두 이름을 지녀도 늘 동일한 것이다.”(데카르트 『정념론』 1장 1절)
“정념은 하나의 대상 속에서 느껴지는 쾌락이나 고통에 의해 그 대상을 추구하거나 이로부터 멀어지는 정신의 변화이다.”(Bossuet De la connaissance de Dieu et de soi-mê̂me I 6)
“정신의 평화를 위하여 정념을 피하라.”(세네카)
“정념은 여흥이다.”(파스칼)
“위대한 일치고 정념 없이 완성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헤겔)
“우리는 정념의 분출로 무엇이 황폐화된다고는 믿지 않는다.”(사르트르)

(…) 의지를 결정하는 일이 흔한 이 차분한 정념들(calm passions) 외에도 같은 종류의 격렬한 정서(violent emotions)가 있는데 이 정서 역시 이성이라는 직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들뢰즈2012 45).

[;164]모든 것은 그 사람의 상황에 달려 있으며 이런 상황의 변이는 차분한 정념과 격렬한 정념이 서로 바뀌어지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정념은 모두 선을 추구하며 악을 기피한다.그리고 이 정념은 모두 선 악의 증감에 따라 증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