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친구를 모른다.

무명을 밝혀 불필요한 악을 물리치는 지혜의 상징 뱀 그리고 장미와의 사랑을 깨닫게 해준 우정의 스승 여우. 『어린 왕자』를 읽은 독자라면 뱀에게서 진실의 이미지와 여우에게서 우정의 이미지를 발견하고 진실한 人間관계로서의 우정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소행성 B330호의 관념적 지리학자 추천으로 지구를 방문한 어린 왕자는 불행히도 아프리카 사막 한가운데 떨어져 뱀을 만난다.

이전에 방문한 여섯 소행성과는 달리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자 행성을 잘못 찾아온 건 아닌지 두려운 생각이 든 순간, 어린 왕자는 달빛 고리 같은 것이 모래 속에서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난생처음 보는 뱀에게 인사를 하고 어린 왕자는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지 사막은 외로운 곳이라고 말을 건넨다. 그러자 뱀이 대답한다. 사람들끼리도 외롭긴 마찬가지라고.

실제로 종종 사막과도 같은 황량한 도시에서 살아가다 보면 친구 한 명도 없이 살아가는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다. 이러한 고독감은 인간에게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다. 혼자라는 상황에서 우리는 정말 외롭고, 둘이 되어서도 외로움은 줄어들 줄 모른다. 왜냐하면, 좀처럼 남을 위해 시간을 드리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바쳐야 우정으로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 친구의 소중함은 내가 그를 위해 바친 시간에 비례하는 법인데.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당시 대부분의 시민들이 자신의 소유물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주절대면서도 몇 명의 친구가 있는지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의아해했다. 실제로 주위 사람들을 만나보면 친구보다는 자신의 재산과 자식의 성적, 자신이 아는 선후배 관료나 재벌에 대해서는 장광설을 펼치지만 진실한 친구 이야기를 자랑삼아 꺼내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어린 왕자』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어린 왕자가 깨달은 것이 결국 우정의 소중함이라는 것이다. 물론 장미와의 사랑을 깨닫게 된 것도 중요하지만, 사랑의 깨달음도 여우와의 우정을 통해서 비로소 배운 것이었다. 진정한 절친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이자 가장 존귀한 보물이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남성들의 경우 의외로 친구가 드물다. 술친구, 골프 친구, 낚시 친구, 축구 친구 즉 아는 사이로 남을 친구가 대부분이다. 그저 취미 생활을 같이하는 사이만 있을 뿐, 친구 없이 살다 보면 점차 고독의 외로움도 잊혀 간다. 그래서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를 이렇게 시작하고 싶었다. “옛날에 저보다 좀 클까 말까 한 별에 사는 어린 왕자가 있었답니다. 이 아이는 친구를 사귀고 싶어 했지요……”라고. 정말 친구가 있는 사람에겐 그게 훨씬 더 진실로 받아졌을 테니까.

그런데 친구를 모르는 어른들에게 새로 사귄 친구 이야기를 하면 어른들은 절대 본질적인 것에 관해서는 물어보지 않는다. 친구 목소리는 어떤지, 무슨 놀이를 좋아하는지 절대 묻지 않는다. 대신 어른들은 나이가 몇인지, 아버지 수입은 얼마인지 물으며 숫자를 우정의 척도로 삼는다.

하지만 진정 정신적 신비로움으로 우리를 이끄는 것은 친구와의 우정이다. 여우와의 우정은 의지와 이성으로 가득한 품위보다 더 큰 가치를 어린 왕자에게 선물한다. 우정은 미지의 세계로 삶을 인도하는 예술과 같은 것이다. 우정은 우리와 세상과 맺어주는 끈이며, 우정과 인생이 조화를 이루어 정신적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아가 우정은 이 삭막한 현실에서도 친밀한 이웃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어린 왕자와의 여우가 서로를 길들이면서 나누는 대화에도 이러한 설렘의 감정이 잘 드러난다.

 

“이를테면,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난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네 시에는 불안해서 안절부절못할 거야. 난 행복이 얼마나 값진지 알게 되겠지! 아무 때나 오면 몇 시에 마음에 옷을 입혀야 할지 모를 거야.”

 

경이로움과 설렘을 잊는지 오래인 이 세상을 우정으로 아름답게 만들어 갈 수 있다. 진정한 친구는 이 세상의 어떤 명예보다 값진 것이다. 『어린 왕자』의 여우는 빵을 먹지 않는다. 그래서 여우에게 밀은 아무 쓸모가 없다. 밀밭을 보아도 아무 생각이 없다. 그래서 여우는 서글픔을 느끼고 이었다. 그런데 어린 왕자의 머리칼이 금빛인 까닭에 어린 왕자가 여우를 길들이자 정말 신이 났다. 밀도 금빛이기 때문이었다. 밀밭이 어린 왕자를 떠올려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밀밭을 스치는 바람 소리마저 사랑하게 될 것이다.

어린 왕자와의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자 여우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여우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으나 여우가 자신을 길들여달라고 했기에 여우를 길들인 어린 왕자는 이별을 슬퍼하는 여우에게 “넌 하나도 득을 본 게 없잖아!”라고 말한다. 그러자 여우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도 득본 게 있어. 밀밭 색깔 덕분이지.” 아무 관심 없던 밀밭이 가장 소중한 친구와의 추억의 장이 된 것이다.

어린 왕자가 그러하듯이 원래부터 우정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경우는 드물다. 설사 우정의 소중함을 알고 있다 해도 막연한 관념에 그치고 실천에 옮기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말과 생각으로 우정을 이해할 수 없다. 어린 왕자는 지구를 방문하기 전에 만난 어른들의 권력욕, 허영심, 중독, 소유욕, 노이로제 때문에 이들과 친구 맺을 수 없었다.

생텍쥐페리는 많은 의리 있는 비행사 친구를 두었다. 그리고 메르모즈, 기요메, 도라 같은 친구들은 그를 감수성 어린 인간으로 평가한다. 생텍쥐페리는 우정과 신뢰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삼았으며, 우정이 자신이 대상에 바친 시간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알고, 시간과 공간을 이롭게 쓰며 우정을 쌓아 갔다. 우정의 길들임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으로 정직과 헌신을 기본으로 한다. 부모 자식, 부부 관계 역시 우정을 전제로 할 때 가치 있는 법이다. 사이가 없는 사이가 아니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도 친밀한 사람, 진실한 이웃 같은 사람, ‘나’이면서 ‘또 다른 나’ 같은 사람이 바로 친구이다.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를 헌정한 레옹 베르트에게 이렇게 호소하고 있다.

 

“나와 그대 사이에 가로놓인 차이가 당신에게 방해되지 않으리라. 오히려 나는 친구인 그대에게 더욱 힘이 되리라.”

생텍쥐페리의 친구들_기요메 생텍쥐페리와 메르모즈 생텍쥐페리 기념우표(1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