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돌아온 『어린 왕자』
270개 언어로 번역되어 1억5천만 부 이상의 판매 부수를 올린 20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 『어린 왕자』가 『쿵푸 펜더』 감독 마크 오스본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하였다. 파리에서 절찬리 상영 중인 이 애니메이션은 한국에서도 12월에 개봉될 예정이다.
『어린 왕자』는 소설뿐 아니라 오페라, 뮤지컬, 연극, 마리오네트 등 각종 예술 장르의 단골 각색 작품으로 끊임없이 각색되어 대중과 호흡하며 소설의 진가를 입증해왔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장편 영화는 『사랑은 비를 타고』로 한국 시네필들에게 잘 알려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감독 스탠리 도넌의 『어린 왕자』(1993)였다. 이 작품은 생동감 넘치는 현대적 애니메이션, 시대를 앞서는 안무와 음악, 뱀 역의 발레 댄서 가수 밥 포시, 조종사 역의 리처드 컬리, 어린 왕자 역의 스티븐 워너 등의 명배우 캐스팅으로 세상의 찬사를 크게 받았다. 특히 원작의 주요 대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스토리텔링은 원작자 생텍쥐페리 자신도 흡족해했으리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찬사를 받았다..
『어린 왕자』의 감동을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부활시키려는 시도도 계속되어 왔다. 이 가운데 『어린 왕자』를 읽고 크게 감동을 받은 드림웍스의 『쿵푸 팬더』 감독 마크 오스본 감독이 원작에 대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8년간의 노력 끝에 장편 애니메이션 『어린 왕자』를 재탄생시켰다. 올해 칸 국제영화제는 이 작품을 공식 초청작으로 선정하여 개막작으로 상영하기도 하였다.
필자는 이번 여름 두 번째 유럽 방문지인 파리에 도착한 이튿날(8월 23일) 모든 일정에 앞서 『어린 왕자』를 상영 중인 파리 UGC 시테 베르시 극장을 찾았다. 자녀들과 손을 잡고 티켓을 구입한 후 함께 대화를 나누며 극장 안으로 들어가는 부모들은 우리 학부모들과는 다른 친밀한 분위기를 보여 주고 있었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소곤소곤 들려오는 질문과 대답은 우리 자녀들과 학부모들과의 대화에서는 들을 수 없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을 가득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는 지금 어떻게 되었나, 왜 장미와 헤어져야 했나 라고 물으면, 함께 온 엄마가 친절하게 자신의 생각을 알려주고 아이의 또 다른 질문이 이어진다. 영화 감상에 방해가 되지 않는 수준에서 오가는 프랑스어 질문과 대답은 오히려 영화의 사운드처럼 녹아들어 영화의 한 구성 요소로 여겨졌다.
새로운 애니메이션 『어린 왕자』에는 명문고에 딸을 입학시키려는 학부모로서의 엄마가 등장한다. 어린 딸은 명문고 입학 면접에서 예상하지 못한 문제에 당황하여 엉뚱한 답을 말해 낙방한다. 엄마는 아예 학교 근처로 이사하여 아이에게 날마다 일별, 월별, 연도별 계획에 따른 선행 학습을 강요한다. 온종일 입시 프로젝트에 따라 기계처럼 암기에 매달리던 아이에게 어느 날 옆집 할아버지부터 어린 왕자의 내용이 담긴 종이비행기가 날아들지만, 아직도 아이는 어린 왕자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호기심이 일어 찾아간 옆집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며 어린 왕자에 눈뜨면서 할아버지에 길들여지고 할아버지와 함께 어린 왕자의 모험에 푹 빠져든다.
어느 동네에서 귀찮은 존재로 여겨져 앰뷸런스에 실려 가는 할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여우와 소녀는 할아버지의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다 비즈니스맨들의 행성에 이르러 어린 왕자를 발견한다. 어린 왕자를 만난 반가움도 잠시 소녀와 여우는 절망에 빠진다. 어른들의 횡포로 어린 왕자는 장미도 기억하지 못한 채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있던 것이다.
소녀가 할아버지의 어린 왕자 그림들을 펼쳐 보이며 장미 이야기를 들려주자 어린 시절을 떠올린 어린 왕자는 용기를 내어 어른들에 맞서 행성의 불을 밝힌다. 온 하늘에 별이 다시 살아나 빛을 발하자 암흑에 쌓인 하늘이 다시 별세계로 바뀐 것이다.
누구나 한번은 어린 왕자의 미래를 묻곤 한다. 어린 왕자는 무엇이 되었을까? 철새의 도움 없이도 소행성 B612호에 무사히 도착하기나 했을까? 장미와의 사랑은 제대로 이루어졌을까? 어린 왕자가 지구로 귀환하지는 않았을까? 이러한 질문은 어린 왕자를 사랑하는 모두가 품을 수 있는 생각들이다. 마크 오스본 감독은 원작의 정신에 충실하면서도 이러한 질문들을 고려하여 어린 왕자를 부활시켰다.
8년간의 각고의 노력의 결실인 이번 『어린 왕자』 장편 애니메이션에는 많은 전문가가 참여하여 작품의 묘미를 더하고 있다. 『슈렉2』 각본팀, 『인크레더블』과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의 미술팀, 『아이스 에이지』와 『니모를 찾아서』의 캐릭터 디자인팀, 『주먹왕 랄프』의 3D 기술팀,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의 스톱모션 시퀀스팀이 참여하여 작품의 완성도를 더하고 있다. 특히 『인터스텔라』와 『인셉션』의 음악 감독인 한스 짐머는 마크 오스본 감독이 들려주는 어린 왕자 이야기에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며 원작에 심취하는 순수함을 보이며 원작의 여운을 살리는 작곡으로 감동을 더하고 있다.
아울러 세계 명배우들의 목소리 연기도 한 몫하고 있다. 조종사 역은 제프 브리지스, 엄마 역은 『어바웃 타임』의 레이첼 맥아담스, 소녀 역은 『컨저링』의 맥켄지 포이가 맡았다. 마리옹 코티야르(장미 역), 제임스 프랑코(여우 역), 베네치오 델 토로(뱀 역), 릴리 오스본(어린 왕자) 등의 목소리 역시 우리에게 친숙함을 더하며 영화의 매력을 더하고 있다.
『어린 왕자』 독자들은 애니메이션 개봉을 오랫동안 고대해왔다. 다행히도 필자는 이번 유럽 방문에 맞추어 개봉된 영화를 보면서 새로운 행복을 느꼈다. 어린 왕자가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윤회를 거듭하며 더욱 우리에게 친밀히 다고 오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 인문학 강의에서 소개한 어린 왕자를 각색한 영화와 뮤지컬, 애니메이션에 대한 반응은 늘 상상 이상이다.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감상하며 서로를 배려하여 어린 왕자와 여우와의 우정을 다시 생각하고 소통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