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의 마음 이야기

ON 4

생텍쥐페리는 비행사로서의 경험을 통해 눈에 보이는 별에서 보이지 않는 비밀을 찾아냈다. 그가 찾아낸 비밀은 사랑과 우정 같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관계 맺음 즉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길들임’이었다. 별에서 온 소년의 지구 여행기 『어린 왕자』는 인내와 책임을 조건으로 하는 이 인간관계를 마음의 수사로 풀어낸 철학 동화이다. 법정이 『어린 왕자』를 하나의 불교 경전으로 비유한 것도 일체유심조를 연상시키는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전한 마음의 가르침 때문일 것이다. 여우는 지구를 떠나는 어린 왕자에게 다음과 같은 자신의 비밀을 선물한다.

“내 비밀은 이거야. 아주 단순하지. 마음으로 보아야만 잘 보인다는 거야. 본질적인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여우가 보이는 것과 보이는 않는 것을 대립시키는 것은 아니다. 보이는 것 속에 숨겨진 보이지 않는 것을 마음으로 보라는 말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 속에만 있기 때문이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지…”라는 어린 왕자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보이지 않는 샘을 품고 있는 것은 보이는 사막이며, 보이지 않는 샘에 비유된 본질을 보는 것은 눈과 머리가 아닌 마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탐진치에 찌들은 마음으로는 본질을 볼 수는 없다. 생텍쥐페리는 자신을 비롯하여 탐진치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어른들을 다양한 직업을 통해 묘사하고 있다.
생텍쥐페리는 서두에서 자신을 어린 시절부터 쌓인 본원적인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어른으로 묘사한다. 어린 시절 급작스럽게 맞이한 아버지와 동생의 죽음 그리고 지식 주입 위주의 교육에서 발생하는 이 두려움은 자기 마음속에 잠자고 있는 순수한 영혼의 어린 왕자를 깨우면서 걷어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러한 기회는 피할 수 없는 위기로부터 온다. 사막에 불시착하여 죽음과 맞선 고난을 경험한 후에야 비로소 마음속의 어린 왕자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소행성 B325호에서 만난 양심적 절대군주는 내 속의 권력욕을 의미한다. 바로 내 속의 탐심으로서 이러한 불필요한 악과 겨루는 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소행성 B326호의 허영쟁이는 내 속의 허영심을 상징한다. 상대방을 엑스트라로 보는 내 허영심은 바로 떨쳐야 할 어리석은 과대망상증이기도 하다.
소행성 B327호의 알코올 중독자는 내 속의 중독된 마음을 의미하는 데 이러한 중독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에서 비롯하기에 자신을 책임지는 마음을 일깨우고 있다.
소행성 B328호의 사업가는 내 속의 소유욕을 의미한다. 알코올 중독보다 위험한 일 중독에 빠진 사업가를 보여주는 것은 소유에 얽매인 현대인에게 존재의 가치를 심어주려는 의도에서 비롯한 것이다.
소행성 B329호의 가로등지기는 수동적 성실함에서 비롯하는 노이로제를 암시하고 있다. 성실과 책임을 왜곡하는 나에서 알려진 불행보다 모르는 행운을 택하는 나로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소행성 B330호의 지리학자는 내 속의 무용한 지식욕을 암시한다. 감정이 배제된 지식 추구로 비인간적 지식을 강요하는 교육에 스스로 대처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위대한 왕자가 되고자 했던 어린 왕자는 사막에 피어난 오천 송이 장미를 보고 자신의 명예욕을 포기한다. 단 한 송이의 장미만을 알고 그것이 세상 유일한 장미라고 생각한 자신의 망상을 버리면서 마음에 변화가 일어난다. 한 송이 장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장미에 바친 시간 때문이며 한 송이 장미나 물 한 모금에서도 진실한 마음을 찾을 수 있음을 깨닫는다. 여우와의 이별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지만 연약한 장미에게 돌아가기 위해 자신의 껍데기인 몸뚱이를 죽이는 길을 선택한다. 어린 왕자는 지혜의 화신 뱀의 도움을 빌려, 멀고도 힘든 여행길에 방해되는, 허물에 지나지 않는 몸뚱이를 그의 양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간다. ‘본질적인 것은 마음으로 본다.’는 여우가 가르쳐 준 단순한 비밀은 어린 왕자가 자신의 별로 돌아가기 위한 여행 방법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철새의 이동을 따라 온 여행은 이제 불가능하여 마음으로만 길을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는 생텍쥐페리와 헤어지면서 “알지. 거긴 너무 멀거든. 이 몸을 가져갈 수 없어. 너무 무겁거든. 몸이란 벗어젖힌 낡은 껍데기 같은 거야. 낡은 껍데기가 슬플 건 없잖아.”라고 이별의 말을 남기며 마음으로 떠나간다. 전투비행사로서의 경험을 다룬 소설 『전시조종사』에서의 생텍쥐페리의 자신의 몸에 대한 정의는 다분히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나의 몸뚱이여, 너 따윈 이제 나와 아무 상관없어! 생각한 것도 내가 아니요, 시련을 겪은 것도 단지 내 몸뚱이였지. 이놈의 몸뚱이를 근근이 여기까지 끌고 왔는데, 이제야 그것이 아무 가치도 없음을 알게되다니.”

사막의 조난자 비행사 생텍쥐페리는 살아남기 위해 사막의 샘을 찾는다. 이제 샘을 찾지 못하면 죽음뿐이다. 여우의 가르침에 힘입어 선지식이 된 어린 왕자는 비행사의 생각을 간파하고 눈에는 보이지 않는 사막의 샘으로 비행사를 안내한다. 그리고 신체적 갈증을 넘어 마음의 갈증을 풀어주는 물의 의미를 깨우쳐준다. 물이 마음에도 좋다는 진실을 어른에게 전하는 것은, 물이 곧 마음을 깨워 몸에 생명을 불어넣는 존재가 아니라 감로수로서의 생명 그 자체임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생텍쥐페리의 마음은 보이지 않는 샘들의 정원이다. 맛도 없고, 빛깔도 없고, 향기도 없는 물, 그 무엇으로 정의 할 수도 없는 물이지만, 생명 그 자체인 물과 더불어 우리 안에 고갈되었던 마음의 샘들 모두가 다시 솟아날 수 있다. 물과 더불어 우리는 마음의 눈을 뜰 수 있는 것이다.
‘본질적인 것은 마음으로만 볼 수 있다’는 이 한 구절만으로 『어린 왕자』는 세계 베스트 셀러 2위로 등극하였다. 수많은 여인들이 이 구절을 자신의 몸에 타투로 새기고, 수많은 문구와 생활 용품에 새겨질 정도로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명언으로 자리매김한 이 구절은 결국 참나는 육신이 아니라 육신의 주인인 마음이며, 그 마음이 순수하고 맑고 깨끗하여 갓난아기의 마음과 같이 순수할 때 그것이 바로 불성이라는 붓다의 가르침과 다를 바 없다. 이 마음자리를 발견하는 것이 깨달음 아니겠는가. 어린 왕자의 죽음은 자신을 잃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아의 발견이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버릴 수 있는 것을 다 버릴 때 구하는 것이 마음임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어린 왕자가 그렇게 소행성 B612호로 돌아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