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의 연기적 존재론

640px-The_B_612_Asteroid,_Hakone,_Japan

사람은 태어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기 마련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관계를 맺기 위해 태어나는 것이라고 말해보자. 태어나면서 자식이 되고, 새로운 탄생과 더불어 동생을 맞으며 형제가 되고, 새로운 자식을 낳으며 부모가 된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위패로 남아 살아남은 자들과 관계를 지속한다. 생의 마감과 더불어 무로 돌아가는 듯해도 영혼의 차원에서 관계는 계속 유지된다. 더구나 생사윤회를 계속하는 중생으로서 오온 자체는 영겁의 세월에 이르기까지 계속 자리를 바꿀 뿐 사라지지 않고 돌고 돌아온다. 혹 누군가의 기억 속에 당신이 자리 잡고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에 당신이 존재하며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어린 왕자』에서 우리는 비행사와 어린 왕자의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이러한 연기적 인간관계를 살펴 볼 수 있다. 어린 왕자는 바람에 실려 자신의 별에 날아와 싹을 트고 열매를 맺어 꽃으로 피어난 장미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장미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사랑을 하면서도 사랑을 모르는 어린 왕자에게 사랑의 달콤함은 잠시, 어린 왕자는 장미의 허영심과 거짓 그리고 그 까탈스러움에 그만 질린 나머지 실증을 느끼고 만다. 장미에 대한 염오는 출세간에 대한 호기심을 낳고 어린왕자는 깨달음을 찾아 구도의 여행을 떠난다.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픈 간절한 염원은 지혜의 화신인 뱀과 우정의 화신인 여우와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지구를 떠나기 직전 어린 왕자는 비행사를 만나 자신이 이들로부터 깨달은 것을 털어놓고 비행사가 그려준 양 그림과 함께 자신의 별로 돌아가면서 오직 마음으로만 들을 수 있는 별들의 웃음소리를 선물한다. 이제 비행사는 어린 왕자의 별을 바라보며 어린 왕자의 웃음소리를 듣고, 어린 왕자는 지구를 바라보며 리비아 사막에서 발견한 샘의 도르래 소리를 들으며 시공을 초월한 우정을 나눈다. 두 사람의 마음이 소혹성 B612호와 지구 사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뛰어 넘어 서로를 연결해주고 있다.
어린 왕자는 어른이 낳은 어떤 아이가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서 잠자고 있는 불성 같은 존재이다. 즉 우리가 깨닫지 못한 불성 같은 우리의 본래 모습이다. 불성은 곧 청정한 우리의 본래 마음이며 어린 왕자는 곧 그러한 어른 속에 죽어 잠들어 있는 불성과 같은 존재이다. 별은 저 멀리 떠돌아다니는 무심한 천체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직시해야 할 본래 마음인 것이다.
본래 내 마음으로서의 별은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내 마음으로서의 별은 내가 바라보고 느끼는 만큼 내게 다가와 나와 하나가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란 별만큼 많은 세상 사람들과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아야 한다. 진정한 인간관계는 예술가들의 정신적 계보가 그러하듯 별에 관한 생각으로 이어져 있다. 결국, 우주 속의 나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밤하늘의 별처럼 각자 밤하늘 별자리의 구성원인 것이다.
사람은 본래 우주의 일체를 이루는 고귀한 존재이지만 개체로서는 어떠한 독자성을 지니지 못한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벗어나면 사랑과 미움, 고통과 쾌락, 눈물과 웃음 그 어느 것도 체험할 수 없다. 이러한 인간의 체험 가운데 모든 인간이 피해갈 수 없는 체험으로서의 죽음이 있다. 그런데 이 죽음조차 사람과 사람을 하나로 연결해 주고 있는 것이다.
개인으로서의 죽음은 외롭고 슬픈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 죽음이야말로 서로를 하나로 이어주는 가장 고귀한 사건이다. 죽음은 본래 하나의 자리로 돌아가는 고귀한 과정이며 만물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사건이다.
가난하고 불행한 가족사 속에서 생텍쥐페리는 누구보다도 고독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고독했다. 아버지의 죽음과 두 동생의 죽음은 생텍쥐페리의 고독을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그가 여섯 살 시절 시도한 보아 뱀 그림 속에 표현한 공포의 트라우마를 이해하는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고독은 그의 저주받은 몫이었다.
자신이 그린 보아 뱀 그림을 보여주며 그 그림이 무섭지 않은지 물어보면 어른들은 누구나 모자가 왜 무서우냐고 비아냥거릴 뿐이었다. 어른들은 정글 숲이나 바람과 모래와 별 이야기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어른들은 지리나 산수, 골프나 정치 이야기를 중요하게 여겼다. 어린 왕자는 이러한 어른들의 천박함에 실증을 느끼며 고독 속에 살아가다 비행기 고장으로 진정한 고독의 세계로서의 사막에 불시착하게 된 것이다.
고독의 극에 달한 상태에서 자신의 고독을 깨닫지 못하고 있던 생텍쥐페리는 죽음과도 같은 사막의 적막함 속에서 자신의 고독과 대면하고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그래서 사막에 불시착하여 사활을 건 비행기 수리에 전념하고 있을 때 그는 어린 왕자를 만나고도 비행기 수리에 전념하며 어린 왕자에게 별 관심을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생텍쥐페리 자신은 사활이 걸린 극한 상황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혼자가 아니었다. 진정성 어린 사람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어린왕자를 만난 것이다. 그 어린 왕자가 뱀의 독으로 자신의 허물을 벗고 죽음을 통해 소혹성 B612호로 떠나자 그는 참을 수 없는 고독의 실체를 느끼게 된다. 고독감을 느끼면서 인간은 그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자신을 벗어나는 것이다.
인간은 고독을 느끼면서 자신을 벗어나며 사람들과의 관계의 중요성을 체험하게 된다. 오천 송이 가운데 한 송이 장미나, 흔해 빠진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와 자신만의 진실한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을 통해 자신을 벗어나 타인과 더불어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런 고독을 느끼고 있던 어린 왕자도 비로소 자신이 장미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장미를 그리워하며 자신의 별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밤이면 별들을 바라봐. 내 별은 너무 작아서 어디 있는지 지금 가리킬 수 없어. 그게 더 잘된 거지. 내 별은 아저씨한텐 여러 별 중 어느 한 별일 거야. 그럼 아저씬 어느 별을 봐도 돼……별마다 아저씨 친구가 되겠지. 그리고 아저씨에게 선물 하나 할게……”

“그래서 슬픔이 가시면(슬픔은 언젠간 가시게 마련이니까) 나를 알게 된 것을 기뻐하게 될 거야. 아저씬 언제까지나 친구로 남을 거야. 나와 함께 웃고 싶어질 거고. 그래서 가끔 괜히 창문을 열어 놓겠지……그럼 아저씨 친구들은 아저씨가 하늘을 바라보며 웃는 걸 보고 무척 놀라겠지. 그러면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 줘. ‘그래. 별들을 보면 언제나 웃게 되지!’ 그들은 아저씨를 미친 사람으로 여기겠지. 난 그럼 아저씨에게 너무 심한 장난을 친 것 같은데……”

어린 왕자는 그 웃음을 방울 소리에 비유하며 이렇게 말한다.
“별들이 아니라 웃을 줄 아는 작은 방울 꾸러미를 아저씨에게 준 셈이지……”

생텍쥐페리는 이렇게 지구의 인간과 별의 인간, 다시 말해 보이는 존재와 보이지 않는 존재의 관계를 아무도 듣지 못하는 웃음소리를 통해 연계시키며 사랑과 우정이라는 인간관계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우고 있다.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사이(人-間)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