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와 선재동자
원효와 의상 이후 화엄사상의 전통을 계승한 한국 불교의 소의경전으로서 『화엄경』이 지니는 위상은 중국 불교의 『원각경』과 일본 불교의 『법화경』만큼 매우 특별한 것이다. 흔히 언급되는 『화엄경』은 부처님의 크고 바른 깨달음과 시공을 초월하여 두루 존재하는 우주의 실상 비로자나 부처님의 세계를 보여주는 경전으로 그 정식명칭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다.
『대방광불화엄경』은 세 종류의 한문 번역본 즉 불타발타라가 번역한 『60화엄경』, 실차난타가 번역한 『80화엄경』, 반야 삼장이 번역한 『40화엄경』이 전해지고 있다. 이 가운데 『40화엄경』은 『대방광불화엄경』 마지막 부분인 39품 「입법계품(入法界品)」만을 한문으로 옮긴 것이다. 「입법계품」을 풀어 설명하자면 ‘들 입(入)’, ‘법 法’, ‘지경 界’, ‘가지 品’으로서 ‘법계에 들어가는 품’ 즉 ‘진실의 세계인 법계로 들어가는 것을 밝혀놓은 경문’을 말하는데 결국 이 품의 주인공인 선재(善財) 동자가 화엄법계에 들어갔음을 의미한다. 『대방광불화엄경』 전체 내용 가운데 사 분의 일이 넘는 분량으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이 「입법계품」은 53선지식을 찾아 끝없는 남방으로 순례의 길을 떠나는 선재(善財) 동자의 구법 이야기로서 『어린 왕자』를 읽는 한국 독자들에게는 깨달음을 얻고자 우주를 여행하는 어린 왕자의 구도 여행의 모델로 간주되고 있다.
구도의 길에서 불퇴 용진하는 전형적인 수행자의 모습을 보이는 선재동자 이야기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의 가르침으로 시작하여 보현보살의 실천과 행동을 통한 깨달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마무리된다. 그런데 유럽 작가들 가운데 실천의 인간, 행동의 작가로 대표되는 생텍쥐페리의 별 이야기 『어린 왕자』 역시 관념적인 지식보다는 실천과 경험을 중시하는 구도기로서의 공통점을 보인다. 더구나 유럽 행동주의의 대표 작가인 생텍쥐페리의 직업은 전업 작가가 아니라 비행사였으며, 그의 소설들은 극심한 고독 속에서 죽음에 맞서 사투를 벌인 그의 비행 모험 일지였다.
생텍쥐페리는 문체를 터득하는 비결이 행동에 있으며, 글쓰기가 경험에서 비롯함을 강조하였다. 어린 왕자는 그러한 작가의 행동과 경험을 통해 열린 마음의 눈으로 발견한 우리 마음 속 부처와 같은 진정한 자아였다. 세조가 우리 속 부처의 마음을 길들이기 위해 『석보상절』을 번역하였다고 밝혔듯이, 생텍쥐페리도 진정한 마음을 길들이기 위해 우리 마음속 어린 왕자를 일깨우기 위해 『어린 왕자』를 쓰며 “알 수 있는 것은 길들인 것뿐”이라며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어린왕자는 자신을 사랑하는 장미의 마음도 모른 채 그 허영심과 까탈스러움에 짜증을 내어 소혹성 B612호를 떠나 지혜와 친구를 구하기 위해 주변의 별을 방문하며 지구에 이르게 된다. 선재동자는 보살도를 이루리라 발심하고 그 실천의 지혜를 주는 스승들을 찾아 구도의 길에 오른다. 선재동자는 문수보살의 가르침에 따라 53 선지식을 찾아 보살도를 이루려 불퇴의 용맹심으로 선지식을 찾아 나선 것이고, 어린왕자는 새로운 친구와 일자리를 구하고 깨달음도 얻을 겸 여섯별을 유람한다. 선재동자와 어린 왕자 모두 구도 여행기라는 만남을 상정하고 있다.
선재동자는 보살, 바라문, 비구, 비구니, 동자, 동녀, 왕, 외도, 야신, 부인, 여인 ― 더구나 26번째 선지식은 논다니이다 ― 등 53 선지식과의 만남으로 실천하는 지혜를 터득해 간다. 어린 왕자는 우스꽝스러운 왕, 허영장이, 술아저씨, 사업가, 지리학자를 만나 실망하기도 하고,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가로등지기에게 마음을 빼앗기기도 하며 만남을 통해 현실을 깨우쳐 간다.
드디어 마지막으로 도착한 지구에서 어린 왕자는 지혜의 화신 뱀을 만나 자기 자신을 버려야만 참나를 찾을 수 있음을 알게 되고, 뱀의 독으로 무거운 육신의 허물을 벗을 수 있기에 뱀이 사람을 물 때 내뿜은 독은 본래 자성이 없음을 깨닫는다. 장미라는 꽃은 오직 자기 별에만 한 송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던 어린 왕자는 오천 송이가 만발한 장미 정원에 이르러 어떤 존재이건 홀로 유일하게 존재하는 일은 있을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우정의 전도사 여우를 만나 사랑하는 존재의 소중함은 자신이 바친 시간에 비례하며, 중요한 것은 마음의 눈에만 보이며, 보이는 것의 아름다움은 보이지 않는 것이 주는 선물이라 귀중한 사실을 터득한다. 그리하여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에 남겨둔, 지구에서는 보이지 않는 장미가 자신과 자신의 별을 소중한 존재로 만들고 있다고 결론 내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결심하게 된다.
어린 왕자는 지구를 떠나기 직전 비행사에게 한 가지 중요한 비전을 털어놓는다. 한 송이 장미나 물 한 모금에서 내가 찾고 있는 것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저씨별 사람들은 한 정원에 장미꽃을 오천 송이나 가꾸지만……정원에서 자신들이 찾는 것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어……”
“찾아낼 수 없고말고.”
“그렇지만 그들이 찾는 것을 장미 한 송이나 물 한 모금에서 찾아낼 수도 있어……”
“물론이지.”
과문한 필자는 이렇게 간단명료한 문장으로 심오한 법계연기의 가르침을 표현한 서양 작가나 철학자의 글을 읽은 적이 없다. 마음의 눈으로 보면 장미 한 송이 물 한 모금에서 진실을 찾을 수 있다는 이 구절은 바로 선재동자가 추구한 화엄 사상의 핵심이기도 하다.
하나 중에 일체 있고 일체 중에 하나 있어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라
한 티끌 가운데 시방세계 머금었고
일체의 티끌 속도 또한 그러하니
마음 거울을 열심히 닦아 마음의 눈이 열리면 한 티끌 속에 진실이 있음을 보게 된다는 것인데 본질적인 것은 마음의 눈에만 보이며 마음으로 보면 하나가 곧 일체임을 전하는 어린 왕자의 마음 이야기와 그대로 일치하고 있다.
선재동자는 구법 여행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51번째 선지식 미륵보살을 친견하면서 법계연기의 실상을 보게 된다. 미륵보살이 선재동자의 보리심에 감응하여 오른손가락을 튕겨 누각의 문을 열어젖히자 우주의 구성 요소 전체가 무수히 많은 꽃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큰 꽃임을 보게 된 것이다. 이후 선재동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인가를 얻어 화엄법계에 들어가게 된다.
어린왕자는 마지막으로 비행사에게 별들의 웃음소리를 선물한다. 비행사가 밤에 하늘을 바라보게 되면, 자신이 그 어느 별에서 살며 웃고 있으니까. 비행사에겐 모든 별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되리라는 것이다. 천 개의 강에 비친 달처럼 말이다. 화엄경의 해인삼매 사상과 무엇이 다르랴. 생텍쥐페리는 우리에게 20세기의 선재동자 이야기를 선물하러 온 시간 여행자처럼 살다 갔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마음의 눈을 얻지 못하고 있다. 아니 구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