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꿈, 부모의 욕심

 

생텍쥐페리의 어린 시절 꿈은 화가가 되는 것이었다. 성경 다음으로 많은 언어로 번역된 현대의 바이블 『어린 왕자』를 쓰게 된 것도 자신의 어린 시절의 꿈을 어른들에게 알리고 의견을 묻기 위함이었다. 피카소가 벨라스케스의 「궁녀들」이란 작품을 오십 여편 이상 모사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유명한 화가들 누구나 그러하듯이 생텍쥐페리 역시 자신에게 처음으로 낯선 세계에 대한 관심의 문을 열게 해준 정글 이야기 속 삽화를 모사하면서 꿈에 그리던 그림 세계에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가 처음으로 그린 그림은 맹수를 삼키는 보아 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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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를 씹지도 않고 통째로 삼키려 꼿꼿이 서 있는 뱀의 벌린 입.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직전 꼼짝달싹 못 한 채 맥없이 뱀의 입안을 바라보는 맹수. 뱀의 꼬리는 원을 그리고 있지만, 맹수의 꼬리는 이미 일자로 힘없이 축 늘어져 있다. 이후 먹이를 먹어치운 뱀은 육 개월 동안 수면에 들어가 죽은 듯 부동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일반적으로 뱀은 악의 상징으로 불린다. 특히 천사와 악마의 개념을 지어낸 기독교 문화에서 뱀은 이브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먹게 한 원죄의 화신이다. 그런데 여섯 살짜리 어린아이 생텍쥐페리가 그린 그림을 보면 뱀이 맹수를 먹고 있다. 맹수는 정글의 포식자로서 대게는 초식 동물을 사냥감으로 살아가는 잔인한 면모를 지닌다. 아이의 세상 보는 법이 관습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다.
사실 모든 서양인이 기독교인들처럼 뱀을 사악한 혐오의 대상으로 묘사한 것은 아니다. 슈베르트의 현악사중주 「죽음과 소녀」의 기원을 이루는 16세기 독일 화가 한스 발둥 그리엔Hans Baldung Grien의 「이브, 뱀과 죽음」을 비롯하여 니체와 현대의 사상가 조르쥬 바타유에 이르기까지 의식 있는 작가들은 무조건적 순종과 맹목적인 믿음을 보이는 동물 양과 대비되는 뱀을 지혜의 화신으로 묘사해왔다. 어린 생텍쥐페리는 자신의 첫 그림을 그리고 나서 정글 속 모험에 대한 성찰에 들어가 보았다.
네 살 때 기차 사고로 아버지를 여인 생텍쥐페리는 아홉 살 때인 1909년 아버지 고향 르망으로 이주하여 예수회가 운영하는 ‘노트르담 드 생트 크루아 콜레주’를 다녔고, 이후 1914년 여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앙베리외앙뷔게 군 병원 수간호사인 어머니의 헌신적인 노력을 인정받아 동생 프랑수아와 함께 앙투안 예수회 소속 ‘노트르담 드 몽그레 콜레주’로 전학 가게 된다.
하지만 두 형제가 모두 예수회 교육 방식에 적응하지 못하자, 그의 어머니는 형제를 스위스 프리부르의 마리아 형제회가 운영하는 현대식 창의적 교육 기관 ‘빌라 생장’으로 전학을 보냈다. 그곳에서 발자크, 보들레르, 도스토옙스키 같은 선악의 피안을 탐구하는 작가들을 탐독하게 되는데, 고등학교자격시험을 밑바닥 성적으로 합격한 생텍쥐페리에게 기억되는 유일한 학창 시절을 보낸 것이다.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에서 자신이 처음으로 모사한 그림을 한 참 동안 생각하고 나서 자신만의 첫 그림을 완성하였다. 그의 첫 그림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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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걸작을 어른들에게 보여 주며 생텍쥐페리는 이 그림이 무섭지 않은지 물었다. 어른마다 “모자가 뭐가 무서운데?” 라고 답했다. 그러나 그 그림은 모자를 그린 것이 아니다. 코끼리를 소화하는 보아 뱀 그림이었다. 조금만 주의 깊게 살피면 오른쪽 끝에 찍힌 점 같은 뱀의 눈을 볼 수 있다. 눈 달린 모자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생텍쥐페리는 어른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보아 뱀 속에 숨어 있는 코끼리를 그려주었다. 이 세상에 설명 없이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어른은 아무것도 없다. 어른들 모두 모자라고 했지만, 그 그림은 모자를 그린 것이 아니었다. 그의 두 번째 그림은 다음과 같다.

상식만으로 사람과 세상을 판단하는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면서 “아, 착한 코끼리가 뱀에게 먹히다니! 뱀은 역시 나쁜 놈이야!”라고 말한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본다고 생각하고, 틀에 박힌 상식만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은 당연히 악한 뱀에 먹히는 코끼리를 연상하며 코끼리를 측은히 여긴다. 하지만 생텍쥐페리의 유고에는 몸집 작은 뱀은 지혜를, 덩치 큰 코끼리는 전쟁 즉 폭력을 의미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의 첫 그림은 모자가 아니고 두 번째 그림에서 뱀은 사악한 존재가 아니다.
게다가 어른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림 따위는 집어치우고 차라리 지리와 역사와 산수와 문법을 배우라고. 이렇게 생텍쥐페리는 나이 여섯에 화가라는 멋진 직업을 포기하고 비행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늘 상식을 요구한다. 아이들을 위한다며 자신의 욕심을 강요하며 아이들의 꿈을 자신의 욕심으로 대체하려 한다. 꿈을 상실한 아이들에게 입시 교육에 도움이 되는 요령을 강요하는 부모들은 아이들이 독서 시간도 빼앗는다. 내신등급과 모의고사점수 향상만이 그들의 존재 근거이기에. 하지만 시인 워즈워스가 어른들의 아버지라고 부른 어린아이들은 모자가 아니라 보아 뱀을 볼 줄 안다. 그래서 어린아이 같은 어른들은 다음과 같이 「이것은 모자가 아닙니다」라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뱀을 모자라고 우기고 그것도 모자라서 모자 따위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하는 어른들은 아이들의 꿈을 소매치기하는 이기적 인간들이다. 『어린 왕자』는 아이들의 꿈을 지키려는 어른의 위선을 반성하게 하고 아이들의 꿈을 실현하도록 도와주는 꿈의 교과서인 것이다.

“배를 만들고 싶으면 나무를 모아, 송판을 자르거나, 일감을 나눠주는 일로 시작해서는 안 된다. 대신 사람들 가슴에 광막하면서도 아름다운 바다에 대한 욕망을 일깨우라.”
-생텍쥐페리, <성채 Citadel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