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의 지성
어린왕자의 사랑과 여우의 지성
지난 호에서 우리는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가 뱀을 인간의 무명을 밝히고 불필요한 악을 물리치는 진실의 빛으로 자리매김하였음을 밝힌 바 있다. 나아가 어린 왕자는 사람들이 교활함의 상징으로 여기는 여우를 길들이고, 아상으로부터 벗어나는 지혜를 가르쳐 준 여우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그와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누기도 하였다. 친구로서의 뱀과 여우는 지금의 나의 허물을 벗지 않고서는 그 누구와도 진정한 친구가 될 수도 없고,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한다. 생텍쥐페리는 우정과 죽음의 지혜를 전하는 여우와 뱀을 통해 감성과 이성의 도움을 받아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인간들에게 무명의 사막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는 새로운 나를 찾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비행기 고장으로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사가 만난 어린 왕자는 어른과 달리 순수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 어린 왕자는 사랑, 마음, 풋풋하고 순수한 감정 그 자체이다. 반면 인간을 피해 사막에 숨어 있던 여우는 교활하고 간악한 동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여우는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는 지성의 소유자이다. 마음으로서 어린 왕자! 어린 왕자의 마음을 일깨우는 생각할 줄 아는 여우! 하지만 여우는 냉철한 지성을 지닌 존재이나 아직 그의 지성은 드러나지 않고 숨어 있다. 여우는 지성을 소유하고 있지만, 지성을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른다. 반면 사랑의 상징으로서의 어린 왕자는 사랑을 하면서도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을 모른다. 그래서 작가는 여우를 통해 어린 왕자가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하여 마음으로서의 어린 왕자가 진정한 인간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
어린 왕자는 찾아볼 친구도 많고 알아볼 것도 많아 자기별을 떠났었다. 그는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진정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하지 않는다. 어린 왕자는 실제로 사랑하고 있기에 사랑의 대상으로서 친구들이 필요하여 여섯 행성을 유람하고 지구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 중시하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어린 왕자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추구하는 어른을 떠나 진정한 지성을 찾아 지구에 온 것이다. 이와 달리 암탉 잡아먹는 일에만 골몰하는 여우 자신은 감성과 사랑이 결핍되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여우는 자신에게 결여된 것을 구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여우는 어린 왕자로부터 사랑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찾아볼 친구도 많고 알아볼 것도 많아.”라고 말하며 지식에 목말라 자신을 떠나려는 어린 왕자에게 “길들이는 것들만 알 수 있다니까.”라고 답하며 자신을 길들여 달라고 애원하는 것이다. 사랑은 지성의 명민함으로 풍요로워지고, 지성은 사랑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에 이른다.
“별들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한 송이 꽃이 있어서……”
“잘 가.” 여우가 말했다.
“내 비밀은 이거야. 아주 단순하지. 마음으로 보아야만 잘 보인다는 거야. 본질적인 건 눈에 보이지 않아.”
흥미로운 사실은 여기에 있다. 여우는 경험하지도 않은 사실을 알고 있고, 어린 왕자는 경험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여우는 어린 왕자가 장미를 사랑하고 있었음을 알고 있지만, 어린 왕자는 자신이 장미를 사랑하고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사랑 그리고 책임
일단 길들여지고 사랑을 받은 여우는 지성과 감수성을 활용하게 된다. 여우는 황금빛 밀밭을 바라보기만 해도 떠나 버린 어린 왕자의 금발을 떠올리며 어린 왕자의 존재와 그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여우는 아직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어린 왕자에게 이를 알려주어야만 했다. 그래서 여우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작별의 눈물을 흘린다. 이 눈물은 어린 왕자가 일깨워준 마음에 수놓인 감수성을 상징한다. 그래서 여우의 눈물은 온화함으로 가득하다. 인연을 맺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는 아무런 책임이 존재하지 않지만, 인연을 맺은 사람 사이는 늘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여우가 말했다.
“하지만 잊어버리면 안 돼.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넌 언제나 책임이 있어. 너는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나는 내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잊지 않으려 어린왕자가 되풀이 했다.
미생으로서의 지성
사랑과 무관한 지성은 무용지물이다. 그것은 불완전하고 미생이며 위험하기까지 하다. 암탉이라는 진수성찬에만 눈독을 들이던 지성으로서의 여우. 여우는 지적이지만 건조한 물질 같은 존재인 반면, 어린 왕자는 이 물질을 깨우는 삶의 샘물이다. 체계에 지나지 않는 지식만을 지니고 있던 여우는 사랑의 힘으로 자신의 지성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다.
한편 여우와의 만남을 통해 애타게 구하던 지성을 깨우친 어린 왕자는 비행사에게 양이 꽃을 먹는지 물어본다. 비행사는 물론 『어린 왕자』를 읽은 독자들 모두 그 이유를 물어보면 거의 대답을 하지 못한다. 사실 이 문제는 사랑과 지성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물음이다. 세상에는 오롯이 사랑만이 할 수 있는 것도. 오롯이 지성만이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사랑과 지성은 서로 길들여짐으로써 서로를 요구하게 되어 있다.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에 있던 장미가 자기 품종으로는 자신이 유일한 꽃이라 말해 왔기 때문에 사막의 정원에 핀, 그의 장미와 똑 닮은 오천 송이 장미를 보고 자기가 불행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여우와의 만남으로 판단력을 키운 어린 왕자는 자신의 장미가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장미라는 걸 깨닫는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장미에 대한 사랑을 모르고 있던 어린 왕자는 자신이 장미를 사랑하기에 고통스러웠음을 깨달았다. 사랑의 본질로서의 고통을 깨달은 어린왕자는 장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누구도 그대들을 길들이지 않았고 그대들 자신도 누구 하나 길들이지 않았다고. 그대들은 예전의 내 여우와 같다고. 내 여우는 세상에 흔한 다른 여우들과 똑같은 여우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가 그를 친구로 삼았기 때문에 그는 이제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여우가 되었다고.
우리는 사랑과 지성으로 무엇을 길들이고 누구를 길들였던가. 내 마음조차 길들이지 못하는 우리. 사랑도 지성도 포기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기적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기적 지성을 이타적 지성으로 전환시키는 생명의 사랑이리라. 그래서 우리는 어린 왕자의 사랑을 일깨워 준 여우의 지성을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전생의 나였을지도 모르는 미생으로서의 여우에게도 감사할 줄 아는 도반이 되도록 노력하자.